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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해외

[5일 / 1904년 ] 사이 영 MLB 역사상 진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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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시즌마다 선수에게 주는 상 중에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상이 바로 ‘사이 영 상’(Cy Young Award)이다. 포스트 시즌에 앞서 미국 야구기자협회(the Baseball Writers' Association of America)의 투표에 의해서 그 해 정규시즌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였다고 평가받는 투수에게 주는 상이다. 1956년 처음 시상을 하는데 1966년까지는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를 통틀어 한 명의 투수에게 수여했는데 1957년부터는 각 리그 1명, 2명의 선수에게 수여한다.

상의 명칭인 사이 영은 실존했던 사람으로서 MLB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선수다. 그가 22년간 선수로 뛰면서 거둔 승리는 511승으로 MLB 최고의 기록인데 2위 월터 존슨보다 무려 94승이 더 많다. 평균 자책점(ERA, Earned run average)은 2.63이다. MLB에서 투수가 500승을 기록하려면 20년(시즌)을 뛰는 경우 매년 25승을 거둬야 한다. 당시에는 투수가 한 시즌 40게임에 선발 출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사이 영이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1867년 3월 오하이오주 길모어에서 태어난 사이 영은 원래 이름은 덴톤 트루 영(Denton True Young)이었다. 그이 이름이 사이 영이 된 것은 1889년 트라이 아웃에서 그의 직구가 빨랐고 관중석의 판자를 찢어버려 ‘사이클론’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사이클론이 사이로 줄여서 사이 영이라고 신문에 보도되면서 그렇게 불린 것이다.

사이 영은 1890년 8월 MLB의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Cleveland Spiders)에 입단하는데, 감독이 몇 년 후 그를 새 정장과 300달러를 주고 영입했다고 밝힌 만큼 큰 기대를 받지 못한 선수였다. 그런데 사이 영은 첫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의 대기록 달성을 시작한다.

사이 영 / baseballhall.org

첫 시즌인 1890년 9승을 올린 사이 영은 다음 해인 27승을 거둔 1891년부터 26승을 올린 1904년까지 20승 이상을 기록했다. 1909년 19승을 끝으로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고 1910년과 마지막 해인 1911년 각 7승을 올린다. 

그 기록 중에서 MLB 역사상 9이닝 동안 한 명의 타자도 루상에 보내지 않는 첫 퍼펙트 게임이 1904년 5월 5일 사이 영에 의해서 나온다. 그 스스로 자신의 경력 중에서 최고의 순간이라고 여기는 퍼펙트 게임이다. ‘보스턴 어메리칸스’의 투수로 나서 ‘필라델피아 어슬렉티스’타자를 상대로 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다. 그때 나이는 37세. 이 퍼펙트 게임을 포함해 사이 영은 통산 3번의 노히트 게임을 달성한다.

사이 영에 앞서 1880년 리 리치몬드와 존 워드라는 두 명의 투수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였지만, 1893년 경기규칙이 바뀌기 전으로 타자가 걸어나가기 위해서는 8개의 볼이 필요했고 타석 홈플레이트와 피처 마운드의 거리가 45피트로 지금의 60피트 6인치보다 짧았다. 현재의 경기 규칙으로는 사이 영의 퍼펙트 게임이 첫 번째 퍼펙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 영은 1937년 야구 명예의 전당(the Baseball Hall of Fame)에 헌액됐고 1955년 11월 4일 88세의 나이로 별세한다. 그의 사망 후 1956년 그를 기리기 위해서 MLB 포드 프릭 커미셔너에 의해 ‘사이 영’상이 제정이 된 것이다. 

사이 영 상 / leland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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