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월등해 같은 종목에서 남녀 대결이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인 남자 선수가 성인 여자 선수에게 경기를 제안하는 것 자체가 여성 비하로 비난받을 수 있다.
그런데 현역에서 은퇴한 50대 남자 선수가 현역 최고의 여자 선수와 맞붙는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바로 테니스에서 그 대결이 있었다. 1973년 5월 13일 어머니의 날에 미국 샌디에이고 북동쪽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라노마에 있는 샌 빈센트 컨트리클럽에서 있었다. 대결의 당사자는 55세의 남성 바비 릭스(Bobby Riggs)와 31세의 마거릿 코트(Margaret Court).
선수 시절 바비 릭스(1918 ~ 1995) / tennismajors.com
이 경기가 열린 사정은 바비 릭스의 남성 우월주의와 관련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바비 릭스는 1930년대 말 아마추어 테니스에서 세계 정상을 밟고 1941년 프로테니스에 진출하여 그랜드슬램을 남자 단식 타이틀을 6번이나 따낸 당대 남자 테니스 최고 선수 중의 한 명이었다. 1962년 선수 은퇴를 한 바비 릭스는 평소 테니스에서 여자 선수의 재능을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당시 테니스에서 여성 선수에 대한 상금을 남성 선수와 동일하게 하여야 한다는 여성 테니스계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여성 테니스 게임은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여성 최고의 현역 선수도 은퇴한 자신을 꺾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며 자신과의 남녀 대결을 제안했다.
바비 릭스는 처음에는 당시 여자 프로테니스 최고 선수인 빌리 진 킹(Billie Jean King)에게 경기를 제안했다. 그런데 빌리 진 킹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빌리 진 킹과 함께 여자 프로테니스를 주름잡았었던 마거릿 코트는 그 대결에 관심을 갖고 바비 릭스 측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 우승 상금을 더 올리기로 하고 제안을 수락 역사적 세기의 성 대결이 이뤄졌다. 마거릿 코트는 1970년 한 해에 4개의 그랜드 슬램 단식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하는 등 1973년에도 세계 랭킹 2위에 있던 선수였다.
역사적 첫 남녀 테니스 대결이 벌어지 경기장에는 3,500여 명의 관중이 모였고 이 경기를 중계한 CBS TV 방송 시청자는 1천만여 명이나 됐다. 경기 결과는 바비 릭스의 승리. 경기를 느슨하게 하는 바비 릭스의 전략에 말려 마거릿 코트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트 스코어 6-2, 6-3으로 완패했다. 사람들은 그 경기를 어머니의 날 학살(Mother's Day Massacre)이라고 불렀다.
승리에 고무된 바비 릭스는 다시 빌리 진 킹에 대결을 제안했고, 빌리 진 킹은 이번에는 승리한 사람이 10만 달러를 모두 갖기로 하기로 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그 대결을 ‘성의 전투’(Battle of the Sexes)이라고 명명했다. 1973년 9월 20일 3만여 명의 관중이 모인 휴스턴 애스트로돔(the Houston Astrodome)에서 열린 바비 릭스 대 빌리 진 킹의 대결은 abc TV가 중계했는데 방송 시청자가 9천만 명이나 됐다.
그런데 그 세기의 성 대결은 빌리 진 킹의 승리였다. 세트 스코어 6-4, 6-3, 6-3으로 빌리 진 킹의 완승이었다. 바비 릭스는 빌린 진 킹의 플레이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너무 빠르고 좋았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테니스 여성 선수들이 요구한 남녀 상금 동등과 관련하여 프로테니스 그랜드슬램 대회인 유에스오픈(US OPEN)이 처음으로 1973년 대회부터 남녀 선수에게 동등하게 상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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