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신체적 손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육상이나 수영 등 개인 종목의 경우 경쟁자와 신체적으로 부딪칠 여지가 없어 그로 인한 부상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종목 특성상 경쟁자와 신체적 접촉을 전제로 하는 종목의 선수는 늘 부상의 위험을 안는다.
특히 권투나 태권도 등 격투기 종목은 상대방을 타격하는 것을 본질적 요소로 하는 스포츠이므로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상해를 입혀 상해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나 위법하지 않아 처벌하지 않을 뿐이다. 특히 권투나 이종격투기 경기에서 사망자가 나오는 현실은 격투기 종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한다. 일부에서는 스포츠가 아니라며 그 금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복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복싱 경기의 개최 금지나 제한을 불렀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1872년 주법으로 복싱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1899년에는 조금 완화하여 스포츠 클럽이 아마추어 복싱 경기를 열 수 있도록 하되 상금을 주는 권투 경기는 열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여 프로복싱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1904년에는 복싱 선수들이 권투선수조합 단체를 결성하여 출전료 명목의 돈을 요구하여 돈을 받았다. 프로 복싱을 허용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프로 복싱계와 팬들의 요구와 당국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1914년 11월 캘리포니아는 타협책으로 프로복싱 경기를 허용하되 최대 4라운드로 제한하고 상금은 최대 25,000달러로 제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프로복싱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프로복싱 라운드 수를 좀 더 늘리자는 요구가 거세져 결국 캘리포니아는 1924년 11월 4일 1925년 1월 1일부터 10라운드로 늘리고 만약 10라운드 결과 무승부인 경우에는 12라운드까지 할 수 있도록 주법을 수정했다. 이로써 1914년 11월부터 시작된 ‘4라운드 시대’(Four-Round Era)가 끝나게 되었다.
1942년 11월에는 15라운드까지 허용하는 입법이 이뤄졌다. 프로복싱계도 15라운드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5라운드 복싱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반대의 주된 이유는 선수의 건강과 안전 문제였다.
그러다가 1982년 11월 13일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으로 15라운드 복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어나 15라운드 복싱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 그 비극적인 사건은 바로 우리‘김득구’선수의 사망이다.
1982년 11월 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챔피언전에서 레이 맨시니와 권투 경기 중 김득구 선수가 14라운드에서 맨시니에게 턱을 강하게 맞아 KO패를 당한 후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4일간의 뇌사상태 끝에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미국 의회에서 권투의 위험성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결국 WBC가 15라운드를 12라운드로 줄이고 WBA 등 다른 권투단체도 이를 따라 15라운드 복싱 경기는 사라지게 된다. 올림픽 권투 종목 역시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부터 헤드기어를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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