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2월 5일 영국 프로축구 구단 맨유(Manchester United)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팀과의 1957-58 유러피언컵(European Cup) 원정 경기에서 3대3 무승부를 기록한다. 무승부를 이룸으로써 맨유는 유러피언컵 대회 준결승전 진출을 확정했다.
맨유는 1957-58 유러피언컵 대회에서 우승이 전망되는 팀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1955년 8월 창설한 유러피언컵은 회원국 리그 우승팀 간의 경쟁으로서 유럽 최고의 클럽을 뽑는 대회였다. 첫 대회인 1955-56 유러피언컵에는 영국 프로축구 1부리그 우승팀 첼시가 참가할 수 있었으나 영국 프로축구리그가 영국 축구를 위해서는 참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고 다음 시즌 영국 프로축구리그에서 우승한 맨유는 영국축구협회(FA) 회장의 도움으로 영국팀으로서 처음 1956-57 유러피언컵에 출전하였다. 준결승전에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 져 아쉽게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맨유가 다음 시즌 영국 프로축구 리그에서도 우승해 1957-58 유러피언컵에 영국 프로축구를 대표하여 출전하게 되었다. 영국은 매트 버스비(Matt Busby) 감독 아래서 영국 프로축구를 석권하는 젊은 맨유 선수단을 ‘버스비 아이들’(Busby Babes)이라고 불렀다. 영국 프로축구 리그는 주말에 열리고 유러피언컵은 주중에 열리기 때문에 당시 크고 작은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지만 리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항공기를 이용하여 이동하여야만 했다.
유고슬라비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팀과의 1957-58 유러피언컵(European Cup) 원정 경기에서 3대3 무승부를 기록함으로써 유러피언컴 대회 준결승전 진출을 확정한 맨유 선수단은 1958년 2월 6일 기쁜 마음으로 귀국 비행길에 올랐다. 맨유 선수단과 기자 등 승객 38명과 승무원 6명 등 44명을 태우고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출발하고 재급유를 위해 서독 뮌헨 리엠공항을 경유하여 맨처스터 공항으로 향하는 전세기는 맨유 선수인 조니 베리(Johnny Berry)가 여권을 분실하는 바람에 원래 시각보다 한 시간 늦게 이륙했다.
뮌헨 공항에서 재급유한 비행기는 14시 19분경 뮌헨 공항 관제탐에게서 이륙 허가를 받고 이륙하려고 하였으나 엔진 이상으로 두 번이나 이륙하지 못했다. 당시 공항에 눈이 내린 가운데 엔진 문제를 진단하는 동안 승객을 공항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한 조종사 제임스 태인(James Thain)은 귀국 일정을 맞추려고 세 번째 이륙 시도를 하기로 하고 승강장 라운지에 휴식을 취하던 승객들에게 연락하여 탑승하도록 했다.
15시 04분경 비행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달리면서 세 번째 이륙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행기는 이륙하지 못하고 활주로 끝에서 활주로 펜스에 부딪히며 도로를 가로질러 추락하고 말았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민가인데 그 안에는 타이어와 연료가 가득 찬 트럭이 있어서 충돌로 폭발이 일어났고 화염에 휩싸였다.
결국 맨유 선수 중 8명이 사망하고, 3명의 클럽 직원도 사망했다. 함께 탑승했던 8명의 언론사 기자도 사망했다. 이들을 포함하여 총 44명 중 23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며칠 후 사망하였다.
이후 사고 조사에서 조종사 제임스 태인의 과실이 지적되기도 하였지만 영국 당국은 공식적으로 사고의 주요 원인 관련하여 활주로의 눈으로 비행기가 이륙하는데 필요한 제 속도를 내지 못하여 추락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관한 맨유의 공식 다큐멘터리 영상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시청할 수 있다.